[칵테일] 갓파더(Godfather)
갓 성인이 됐을 무렵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등장해 인생의 쓴맛을 털어줄 것마냥 하던, 주변 어른들이 맵고 짠 안주와 함께 밤새 마시던 초록병 속 소주가 정말 맛이 없다는 것을. 알코올에 길들여지기 전 싱싱한 간으로 용기있게 들이킨 그 한 잔이 어찌나 쓰던지. 민증에 잉크도 안 마른 아이들이 매년 새해 벽두부터 맛도 없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그 투명한 독으로 간 건강을 테스트하다 보면 어느새 그 맛에 길들여져 또다시 수많은 피자들을 길거리에 만들고는 하는 것이다.
무슨 폐기물처럼 언급하긴 했지만, 희석식 소주가 그리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시점에서, 소주가 생각나는 순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추운 겨울 국밥을 먹으러 들어갔을 때, 벌겋게 끓인 감자탕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 굴보쌈과 홍어삼합을 입안에 넣을 때, 깔끔하게 입안을 씻어주는 데 소주만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무용담처럼 새우깡에 소주를 먹기에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본듯 하다. 여전히 안주 없이 그 초록병을 마주하기에는 나름 다이내믹했던 내 20대 초중반도 그닥 거칠지 않은 것 같다. 하물며 아직 여리디 여렸던 스무 살의 나였음에야 그 맛을 알았을까. 이미 알코올의 맛에는 절여졌지만 소주의 참맛을 알지 못한 그 때의 나에게, 우연히 알게 된 칵테일의 세계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정확히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쩌면 그때쯤 시작한 유튜브 열풍에 힘입어 보게 된 어느 영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렇게 자주 보고 있는 채널이 아니지만, 와일드 터키 101을 비롯해 위스키부터 간단한 칵테일을 소개하고 가끔 만드는 것도 보여주는 채널이었다. 평생을 주류(酒流가 아니라 主流)와 거리두는 것을 즐긴 홍대병 환자 말기의 나에게 그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위스키와 칵테일이라는 존재는 내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고, 영상들을 보면서 어느새 가득해진 내 자취방의 술장을 상상하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에게는 자취방도 술장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건 술 반입이 금지된 2인실 기숙사와 겨우 한 달 버텨나갈 용돈 정도. 남들 다 마시는 소줏값도 아까운 마당에 가뜩이나 기형적인 주세로 인해 비싼 양주를 사먹을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 있나. 열심히 상상하는 수밖에. 보드카, 진, 럼, 데낄라, 위스키와 리큐르가 가득한 술장을 상상하며 편의점에서 파는 네 캔에 만원짜리 세계맥주를 열심히 마셨더랬다.
군대를 다녀온 후 어느 정도 여유 소득이 생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아르바이트도 하고, 들었던 적금으로 노트북과 게임기를 사고 나니 상상으로만 남겨두었던 그 때 그 술장이 아른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침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친구가 들고 온 위스키 한 병과 글랜캐런 노징 글라스로부터, 내 주생(酒生)이 다시 쓰이게 되었다.

위린이에게는 과분했던 킬호만으로 시작해 자취방의 술장을 채워나가면서, 은근슬쩍 칵테일에 대한 욕망이 솟아났다. 얼마나 멋있던가. 친구들을 집에 불러 칵테일을 만들어서 대접하는 건 썩 멋있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칵테일 중 무엇을 먼저 만들어서 갖추어 놔야 할지는 너무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칵테일의 그 수많은 바리에이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며, 보드카, 진은 무슨 브랜드를 가져다 놓고 어떤 종류의 리큐르를 갖춰놔야 할지, 가뜩이나 유통기한을 맞추기 힘든 과일은 얼마나 쟁여놓아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결국 유야무야되려던 판에, 이미 술장에 몇 병 갖춰놓은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을 찾기 시작했다.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은 위스키의 그 강한 캐릭터 때문에 수많은 리큐르와 주스, 과일 등이 섞여서 나오는 보드카, 럼, 진 베이스 칵테일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기나긴 서론의 끝에 드디어 내가 집에서 처음 만들어 본 칵테일은 위스키 + 리큐르로만 구성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칵테일, 갓파더(Godfather)였다.
재료
모든 칵테일이 그렇듯 만드는 사람마다 조금씩 레시피가 달라지지만, 갓파더는 그렇다 해도 크게 추가되는 것이 없다. IBA(국제 바텐더 협회, International Bartenders Association)의 공식 레시피 기준으로는 위스키와 아마레또 뿐이고, 아마레또의 대표 주자 디사론노의 레시피 역시 거기에 오렌지 트위스트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아마레또란 본래 아몬드 베이스 리큐르로, 제과제빵에도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다. 아몬드 베이스라고 하면 볶은 아몬드의 고소한 향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체리향이 강하게 나는 리큐르이다. 이 향은 벤즈알데하이드의 향이라고 하며, 완전한 생체리라기 보다는 닥터페퍼에서 맡을 수 있는 인공 체리향이 느껴진다. 합성 체리향을 만들기 위해 해당 성분을 추출해서 만들 것임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마레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레또를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디사론노의 디사론노 오리지날레이다. 수많은 리큐르를 만드는 디 카이퍼 등에서도 아마레또가 나오긴 하지만, 역시 디사론노가 근본인 만큼 디사론노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으며, 23년 12월 기준 이마트 앱에서 2.5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제조

재료가 간단한만큼 레시피도 간단하다. IBA 공식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올드 패션드 글라스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 1 1/4 oz(35ml)와 디사론노 1 1/4 oz(35ml)를 잔에 붓는다.
하지만 디사론노의 맛이 다소 강렬하기 때문에, 위스키와 디사론노의 비율이 1:1인 위 레시피대로라면 위스키고 뭐고 단맛과 체리향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만드는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올드 패션드 글라스에 얼음을 채우고, 디사론노 1/2 oz(15ml)와 위스키 1 1/2 oz(45ml)를 잔에 붓는다.
위스키와 디사론노의 비율이 3:1인 위 레시피대로 하면 위스키의 향과 함께 디사론노의 향미도 즐길 수 있다. 또한 잔에 넣는 순서도 바뀌었는데, 보통 칵테일의 경우 기주가 되는 술을 먼저 붓고 그 외 재료를 올리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렇게 하면 밀도 차이로 인해 디사론노가 바닥에 남으면서 위스키의 맛이 먼저 느껴지고 디사론노의 단맛이 뒤에 찾아오게 된다.

기주가 되는 위스키는 주로 스모키한 스카치 위스키를 많이 사용한다. 바에서 정석으로 취급 되는 것은 올드 파(Old Parr)라고 하며,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에 가장 무난한 것은 역시 조니 워커(Johnnie Walker) 블랙 라벨일 것이다.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금상첨화이다. 스모키한 향취를 강조하고 싶다면 조니 워커 더블 블랙을 추천하며, 디사론노의 단맛을 극대화하고 싶으면 버번 위스키를 넣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때 기주를 보드카로 바꾸면 갓마더(Godmother)라는 칵테일이 되며, 하이볼 타듯 콜라와 디사론노를 섞는다면 정말 닥터페퍼의 맛이 나는 닥터페퍼(Dr. Pepper)라는 칵테일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닥터페퍼를 자주 만들어서 위스키와 디사론노의 소모 속도를 얼추 맞추는 편이다.
홈텐딩에 입문하고자 하는 많은 위린이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칵테일이 바로 이 갓파더이다.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그 재료들마저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하다. 끈적이는 달콤함과 묵직한 도수로 밤을 지내고 싶다면 이만한 선택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