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1. 00:11ㆍ취미/음악
내게 음악에 대한 기억은, 네다섯 살 무렵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여행을 다녔던 것부터 시작한다. 엄정화, 쿨, DJ DOC, 거북이 등 다분히 어머니의 취향이었을 90년대~00년대 음악을 흥얼거리며부터, 아마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는 시점은 다양할테지만, 대부분은 10대 초중반에 그 일생에 가져갈 호오(好惡)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고, 나 역시 그러했다. 지금껏 즐기는 스포츠, 게임, 책에 대한 취향은 이 때 생겨 지금껏 크게 변하지 않았고, 음악 취향도 이때부터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Rock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장르에 뒤늦게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취향이라는 것에도 단점이 명확하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자꾸만 새로운 것이 나오고, 기존의 것들은 변형되어 가는데,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순식간에 옛것이 되어 낡아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플레이 리스트 기능은 이것을 여실히 체감케 한다. 내가 즐겨듣는 아티스트들의 신곡은 나오지 않거나 스타일이 변했고, 나처럼 죽어버린 장르에 천착하는 이들을 위한 난파선에 매달린 비슷한 처지의 이들끼리 서로 아직 듣지 못한 옛날 곡들을 나누곤 하는 것이다.
물론 Rock이라는 장르가 완전히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내가 Rock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무엇이 Rock이냐에 대한 적절한 기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오늘날에도 Rock 장르로 분류되는 곡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특히 Pop에는 Rock, 힙합 등 장르 음악의 문법이 이미 다수 이식되어 여전히 계속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Rock이 시대적 주류였던 시대와 장소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메인스트림이었던 장르의 생동감 넘치는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 유산만을 후천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Rock을 좋아한다. 10여 년 전 들었던 그 곡들은 아직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고, 아직도 그 밴드들의 내한 소식이 들리면 가슴이 설레곤 한다. 다행인 점은, 음악은 게임과 달리 시대가 변한 후 들어도 시대적 괴리감을 느낄 일은 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지금도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앨범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10개의 앨범을 한번 소개해보려 한다. 각 앨범의 수록곡 중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곡에는 추가적으로 볼드체 표기를 했다.
10. Riot On The Grill - Ellegarden
# | 제목 | 비고 |
1 | Red Hot | |
2 | Monster | |
3 | Snake Fighting | |
4 | Marry Me | 타이틀곡 |
5 | Missing | SPYAIR 리메이크 (2017) |
6 | Bored of Everything | |
7 | TV Maniacs | |
8 | Niji | |
9 | I Hate it | |
10 | BBQ Riot Song |
처음 Rock 음악을 접하게 됐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 때는 Rock 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 소개해 준 여러 영어 노래들 중 하나였다. 정확하지는 않은 기억이지만, 아마 영어 가사로 된 노래들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중 내 귀에 가장 오랫동안 맴돌게 된 이 노래가 바로 Ellegarden의 「Marry Me」라는 곡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Ellegarden은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일본 밴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영어 가사로 되어 있고, 발음 역시 일본식 영어 발음이 아닌 미국식에 가깝기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잦다. 이는 Ellegarden의 보컬 호소미 타케시의 영어 발음이 매우 좋고,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일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 곡 「 Marry Me 」 의 경우 한국에서도 굉장히 인기를 끌었고, 결혼식장에서도 가끔 축가로 불리는 곡이지만 가사의 내용은 '내가 더 돈이 많고, 잘생겼더라면 나와 결혼해줬을까?'라는 내용이라서 곡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꽤나 안타까운 사연의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멜로디컬한 Rock 밴드의 느낌이 매우 좋아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Ellegarden의 대표곡이라 하겠다.
2004년 나왔던 앨범 『Pepperoni Quattro』도 매우 좋은 앨범이고, 「 Supernova 」, 「 Make A Wish 」, 「 Pizza Man」,「 Perfect Days 」등 좋은 노래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나를 Rock의 세계로 인도해 준 「Marry Me」가 수록된 이 앨범을 더 소개하고 싶었다.
Ellegarden은 2008년 해체했었지만, 2018년 이후 활동을 재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9. A Night At The Opera - Queen
# | 제목 | 비고 |
1 | Death on Two Legs (Dedicated to...) | |
2 | Lazing on a Sunday Afternoon | |
3 | I'm in Love with My Car | |
4 | You're My Best Friend | |
5 | '39 | |
6 | Sweet Lady | |
7 | Seaside Rendezvous | |
8 | The Prophet's Song | |
9 | Love of My Life | |
10 | Good Company | |
11 | Bohemian Rhapsody | 동명의 전기 영화 존재 |
12 | God Save the Queen | 영국 국가 |
원래 Queen이라는 밴드가 가진 인지도에 대해 두 번 말하자면 입만 아프지만, 특히 한국의 일반 대중에 국한하여 이야기 하자면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개봉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선풍적인 인기 덕분에 노래방 인기 순위에 「Bohemian Rhapsody」를 비롯한 Queen의 노래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누군가 "에 - 오"라고 소리치면 "에 - 오"로 답하는, 떼창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이 나라에 프레디 머큐리의 퍼포먼스가 재현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Queen의 수많은 명곡과 수많은 앨범 중 어떤 앨범을 선정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가 수록된 『News of the World』, 「Fat Bottomed Girls」, 「Don't Stop Me Now」가 수록된 『Jazz』, 「Radio Ga Ga」, 「I Want to Break Free」, 「Hammer to Fall」 이 수록된 『The Works』등 너무나도 좋은 앨범이 많이 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Bohemian Rhapsody」가 수록된 이 앨범을 꼽을 수밖에 없었다.
8. Mother's Milk - Red Hot Chilli Peppers
# | 제목 | 비고 |
1 | Good Time Boys | |
2 | Higher Ground | |
3 | Subway to Venus | |
4 | Magic Johnson | |
5 | Nobody Weird Like Me | |
6 | Knock Me Down | |
7 | Taste The Pain | |
8 | Stone Cold Bush | |
9 | Fire | |
10 | Pretty Little Ditty | |
11 | Punk Rock Classic | |
12 | Sexy Mexican Maid | |
13 | Johnny Kick a Hole In the Sky |
Rock 음악에 어느 정도 관심이 생기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친했던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의 지원을 받아 멤버는 쉽게 모았지만, 각자 무슨 악기를 맡을 지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야 대부분 악기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 내가 베이스 기타를 택하게 됐던 계기가 된 밴드가 바로 Red Hot Chili Peppers(이하 RHCP)였다. 플리의 차진 베이스 슬랩에 매료된 내가 베이스를 맡자, 자연스레 각자의 악기가 정해지게 되었고, 중학교 마지막 1년의 열정을 밴드에 고스란히 녹일 수 있었다.
RHCP는 펑크(Funk)의 색채를 진하게 가진 Rock 밴드인데, 플리의 베이스 슬랩 뿐 아니라 존 프루시안테의 화려한 기타를 비롯해 모든 구성원들의 악기 실력이 출중하기로 유명한 밴드이다. 『By the Way』앨범에 수록된 「By the Way」나 「Can't Stop」역시 추천할 만하다.
7. 불의 발견 - 부활
# | 제목 | 비고 |
1 | Lonely Night | 타이틀곡 |
2 | 슬픈 바램 | |
3 | 21c 불경기 | |
4 | 작은 너에게 | |
5 | 마술사 | |
6 | 또 다른 미로 | |
7 | 믿음 | |
8 | 회상 Ⅰ | |
9 | 불의 발견 Ⅰ | |
10 | 불의 발견 Ⅱ | |
11 | 불의 발견 Ⅲ | |
12 | 비밀 | Special Bonus Track |
부활 역시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밴드이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 대부분은 발라드 넘버이다. 「사랑할수록」,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대부분 락발라드로 칭해지는 장르의 곡임에 비해, 『불의 발견』앨범은 퍽 독특하다. 하드 Rock, 헤비 메탈에 가까운 앨범이기 때문이며, 여기서 말하는 '불'은 바로 이 때 합류한 보컬 박완규를 뜻한다.
보컬의 그 살인적인 난이도로도, 경쾌한 분위기의 명곡이라는 점에서도 유명한 타이틀곡 「Lonely Night」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는 「마술사」나 「믿음」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이고, 특히 개인적으로는 「Lonely Night」보다 「마술사」를 더 즐겨듣는 편이다.
한국에서 헤비 메탈을 하는 밴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대중적인 밴드가 이 정도의 완성도로 내놓은 앨범은 드물다고 생각이 들어 선정하게 되었다.
6. American Idiot - Green Day
# | 제목 | 비고 |
1 | American Idiot | 타이틀곡 |
2 | Jesus of Suburbia | |
3 | Holiday | |
4 | Boulevard of Broken Dreams | |
5 | Are We the Waiting | |
6 | St. Jimmy | |
7 | Give Me Novacaine | |
8 | She's a Rebel | |
9 | Extraordinary Girl | |
10 | Letterbomb | |
11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 |
12 | Homecoming | |
13 | Whatsername | |
14 | B-side |
Green Day는 정말 고마운 밴드이다. Rock 음악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수많은 밴드들이 간간히 앨범을 내지만 대부분 그 전성기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 때의 명성을 깎아먹는 행보를 간혹 보이거나, 혹은 새 앨범을 포기하고 투어를 위주로 다니는 스타디움 밴드로 전환한 데 반해 계속해서 소위 폼(form)이 떨어지지 않는 새 앨범들을 꾸준히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2024년 발매된 『Saviors』, 2020년 발매된 『Father of All Motherfuckers』, 2016년 발매된 『Revolution Radio』의 수록곡들이 내 플레이 리스트의 평균 발매년도를 끌어내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밴드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던 『Dookie』 이래로 단순한 펑크(Punk), 개러지 Rock에 가까웠던 이들이 Rock Opera라고 불릴 정도로 변신을 했던 이 앨범은 '교외(郊外)의 예수(Jesus of Suburbia)'로 불리는 한 미국인 청년의 여정을 노래하고 있으며, 앨범과 타이틀곡의 제목에 걸맞게 미디어의 허위와 선동에 침식당하는 현대 미국인의 삶과 그러한 현실에 울분과 좌절을 느끼는 세태를 표현하고 있으며, 일종의 프로테스트 아트(Protest Art)로 분류될 수도 있는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술했듯 Rock Opera로도 분류가 되며, 이러한 점에 힘입어 뮤지컬화되기도 했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로는 이 다음 앨범인 『21st Century Breakdown』이 더 성숙해진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고, 곡의 스펙트럼도 넓은데다 보내는 메시지도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American Idiot』에서 보여준 Green Day의 색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앨범을 선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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